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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윤현승

라크리모사, 눈물의 날

라크리모사
윤현승 지음 / 로크미디어
나의 점수 :

스포일러 극미량. 그냥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Lacrimosa dies illa....(눈물짓는 그 날이 오면)

<라크리모사>는 이 한 라틴어 문장으로 집약할 수 있다. 작가로서의 윤현승은 판타지의 태를 거의 벗어던졌다. 이쯤 되면, 문장만 번역투로 조금 어색하게 바꾸고 작가 이름만 고풍스럽게 영미식 필명을 쓰면 영미식 괴기 소설이라고 해도 믿겨질 정도였다. 현실에 기반하고 현실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끝을 열어두는, 그런 소설.

윤현승 작가의 변신은 놀랍지만, 이 내용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다. 비밀이 묻힌 도서관. 그 곳의 비밀을 간직한 듯한 사서. 그 안에 도사린 '그것'.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고 하면 어설픈 독자는 믿을 법도 하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명철한 탐구의 자리를 <라크리모사>에서는 말싸움과 퍼즐이 차지했으며, 그 퍼즐은 작위적인 냄새가 없는 것도 아니다. 고전적인 신비주의적 악마론이 작품의 본질 앞에 버티고 서서 가로막고 있는 것 역시 장애 요소다. 노블레스 클럽과 윤현승 작가가 일반인이 처음 보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를 쓰고자 했다면 실패했다. 장르계의 어법을 이해하고 있는 독자라면 나처럼 재미있게 읽었을테지만.

주제는 이악스럽다. 더 이악스럽기 그지없는 기자라면 이것을 '동양적 윤회전생'으로 승화시킬 법도 하다. 나는 단지 이것을, 나의 세계가 종말을 고하는 날이 왔을 때로 변주해 읽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볼 시간은 많을 것이라고, 윤현승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윤현승 작가의 A자 갈등 곡선은 완만하기 그지 없는 빈유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면서 5/6을 읽었지만 아직 1천 매는 더 남아있는 줄 알았다. 그물이 질겨 모든 돌이 빠짐없이 수습되었긴 했으나 조금 더 일찍 돌을 수습하기 시작해서 몰아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나와 같은 독자들은 M이기 때문에 미리 당겨주면 더욱 오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데. 필력으로 몰아넘겼지만 인물의 뜬금없는 등장 역시 감상에 있어서의 변수 중 하나다. 물론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수천 년의 간극이라는 것은 작가의 웅비한 상상력에 비해 일반 독자에게는 좁히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점을 중심으로 감상하고 있으나 사실 국내 판타지 10대 수작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윤현승 작가의 지금까지 작품 중에서는 가장 위에 두겠다. 완성은 항상 가장 충만한 부분인 것은 아니니까. 다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자신이 던진 돌을 모두 수습했고, 독자와 밀착하여 쉴 새 없이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윤현승은 정상급 작가요, <라크리모사>는 수작이다. 지금 당장 읽어보길 권한다.



+ '다섯 번째'라는 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왜 '다섯 번째'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이 조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단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위해 고민할 생각이다.

by 친한척 | 2008/05/08 00:00 | 감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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