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26일
부모를 감히 비난하는 이유
진짜 아동학대를 하는 건 유모차 부대가 아니라 당신들이다!
(리플창의 아울양 님과 sonnet 님의 논쟁에 나온 사례를 다수 참고했습니다)
유모차 부대가 한 일이 상당히 센세이셔널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유모차에 탈만한 아이들이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요. 그렇다면 아이들 의사에 상관없이 부모의 의사에 따라서 유모차가 전경들 앞에 섰다는 의미가 될 터인데, 이야기는 거기에서 시작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들이 공분을 느끼고 나섰다는 사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저만 해도 1년 전의 제가 이렇게 촛불이란 말에 호의적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거 다 떠나서 유모차 부대의 문제점은 아이들을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동의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필요하지도 않은 위험에 노출시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하고, 넘어지고 까지면서 자라는 거라고도 하고, 어디 하나 부서지면서도 쑥쑥 큰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런 말이 있다고 해서 애들 싸움 붙이고 넘어뜨리고 까지게 하고 어디 하나 부서뜨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있으면 그게 아동학대지 뭡니까.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유모차 부대의 어머니들의 모성결핍에 대한 비난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사실관계만 따진다면 저 어머니들은 일단 아이들을 위험이 있을 소지가 있는 현장에 끌고 나온 것이 맞죠. 물론 그게 모성결핍이냐에 대해선, 저는 일단 아니라는 입장이긴 합니다만.
팔레스타인 아이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릅니다. 팔레스타인 아이의 아버지는 그 자신 역시 피해자이고, 그 아이가 직면한 위험은 아버지 역시 인지하지 못했고 인지했다손 치더라도 아이가 그런 위협에 직면하는 것에 동의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불가항력이라고 부르지요. 불가항력이 아닌 이상 부모가 아이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심지어 스스로가 위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해도 말이지요. 그 아이들이 만독불침 금강불괴라던가(웃음) 물이랑 방망이가 알아서 피해가는 초능력자라면 다른 문제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아는 한으론 그런 초능력자 아기는 전경 앞 유모차 안에 없었던 거 같습니다. 미국에서 생식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영양실조에 걸리게 하면 부모는 구속되어 아이에게 접근금지가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는 인식이 없었고 실제로 아이를 위하는 행동이라 생각해서 했지만 결국엔 아이를 해치게 되는 행동을 한 것이지요. 그건 죕니다. 그리고 보시는 분들도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아이보다 유모차 부대에 훨씬 잘 어울리는 사례입니다.
위험이 아니라고들 하십니다. 하지만 위험입니다. 상식적으로 보아서 그 상황이 위험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 상황에서 안전해야 정상'이라고 하시는데, 1)그 정상적인 국가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유모차를 끌고 전경 앞에 나서신 거 아닌가요? 또한 2)설령 '정상적인 국가'라는 점을 넘어간다 쳐도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을 간과하고 계십니다. 3)그리고 이 상황은 실수가 일어난다면 평시보다 훨씬 큰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어째 위험이 아닙니까? 신호등 사례에서 신호등을 없애봅시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는 우선권을 지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차가 달려오는 것을 빤히 보고도 아이 손을 잡고 횡단보도로 걸어나가는 부모는 없지요.
유비추론(혹은 사례)을 자꾸 비꼬아서 다시 쓰게 되는데 이 정도면 유추가 의미가 없다는 걸 논박하는데는 충분하다고 보니까 그만하도록 하고요.... 법적으로 옳지 않다고 해서 실제로도 옳지 않다는 뜻은 아니란 얘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저는 실제로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공법상으로 정부의 국민을 지키는 의무에 대한 얘기도 끼어듭니다만, 그 의무의 이행을 믿지 않아서 유모차를 끌고 나선 상황에서 적어도 그 부모의 심리는 (사실이 어떻건 간에) <비록 이명박 ㅅㄲ가 전경한테 밀어버리라고 명령을 내린다 해도> <설마 나랑 우리 애기가 유모차를 끌고 앞에 서 있는데 함부로 밀고 나오진 못하겠지>였을 겁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전반부죠. 저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쥐새끼 수준의 정신나간 명령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일텐데 과연 아이를 끌고 나온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요? 비록 국가가 그런 의무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저런 생각을 가진 상태로 유모차 끌고 나왔다면 그건 현명하지 못한 처사 이상으로 아이를 위험에 처하게 한 게 맞다고 봅니다. 적어도 그 사람들 마음 속에서는.
단순하게 요약해봅시다. 제 아내가 그랬다고 칩시다. 아내를 빼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는 일단 전경 앞에서 강의석처럼 알몸으로 인간 띠라도 만들고 뭐라도 해서 전경이 밀고 오지 못하게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빼올 수 있는 상황이거나 저에게 의논하러 온다면 저는 절대 반대합니다. 아이는 어떠한 위험에서라도 완벽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존재니까요. 적어도 우리는 만전을 기해서 아이를 보호해야 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면 제가 너무 서양식 딱딱한 가치관에 젖어서 애들은 깨지면서 큰다는 단순한 진리는 모르고 있는 건가요?
썰렁한 얘기 좀 해보자면 어청수 총장의 아내나 영부인이 남편이 자는 틈을 타서 전경 앞에 저들을 끌고 나왔다면 저는 어쩔까요? 아울양 님께서 말씀하신대로의 법치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심정적으로는 하등 문제가 없다고 할 겁니다. 게다가 플러스 알파로, 이 경우에는 전경들이 쇄도할 위험이 유모차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통수권자나 지휘관에게 달려든다면 법적인 제지가 가능하니까요. (적어도 저들이 스스로를 알릴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겠지만)
유모차가 비어있었다면(혹은 인형이 들어가 있었다면)? 그렇다면 저는 유모차 엄마들의 나폴레옹적인 지략을 두고두고 칭송했을 겁니다. 하지만 유모차는 주인이 안에 들어가 앉아 있었죠. 거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유모차 엄마들을 비난하는 움직임을 통탄하는 분들은 이 차이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이들을 노출해서 위험을 차단하고 언로를 뚫으려 하는 것은 뛰어난 전략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리 원칙을 지키고 이성을 지키는 것이 투쟁을 장기간 이어나가고 성공적으로 이어지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저에게 이 현시창에서도 빛나는 이상을 찾도록 만듭니다. 적어도 마하트마 간디가 스스로 말 못하고 의사표명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싸우라고 했다던가, 아니면 일제시대 독립 투사 중에 여섯달박이 아이가 있다는 소린 못 들어봤습니다.
오히려 그 암울하기 그지없는 시대에도 '어린이'라는 말을 창조해가며 그들을 위한 읽을거리, 그들을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던 방정환 선생의 존재가 더욱 빛나는 요즘입니다. 그 분 얼굴, 어찌 보시렵니까? 유모차 어머니들을 비난하는 모든 분들이 촛불을 탄압하고 언로를 막는 그들에게 문제가 없고 잘못이 없다는 말을 하고싶은 건 아니에요. 그에 맞서 싸우는 쪽이 정당성을 주장하려 한다면 똑같이 위험에 처해서는 안 되는 것을 위험으로 내모는 방식으로 대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 간단한 것, 이렇게도 긴 글을 써가며 주장해야 할 정도로 안 지켜지고 힘든 것이었습니까? 우울합니다.
ps. '애들이 뭘 알아'라는 주장은 시효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에 관해:
그렇다면 유모차 부대의 어머니들은 애들에 대해 뭘 알고 있습니까? 아이들에게 동의 여부는 물어보셨습니까? 아이들의 정치적인 입장을 알기 이전에 아이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의사능력을 증명받은 3살박이 신동이 '엄마 절 촛불집회의 인간 담벼락으로 써주세요'라고 했다면 그 때 한 번 고려는 해보겠습니다.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같은 의미에서 일부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위에 참가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을 선생으로서 기본 자격이 없는 행위라고 봅니다. 교사 역시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자신이 인지하는 어떤 잠재적인 위협으로부터라도 보호할 의무가(다른 모든 의무에 우선해서) 있으니까요. 아이를 데리고 시위에 참가하는 부모 역시 그렇습니다. 아닌 건 아닌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아이 얼굴을 몇 년째 선동적 블로그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으신 분, 아이 초상권 침해는 그만하시고 빨리 다른 사진으로 바꾸세요 좀.
이 얘기와 관련해서는 모기불통신 기불이 님의 엄마와 애기는 둘이다를 링크합니다.
어떤 아Q병 환자의 뻘짓목록
(리플창의 아울양 님과 sonnet 님의 논쟁에 나온 사례를 다수 참고했습니다)
유모차 부대가 한 일이 상당히 센세이셔널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유모차에 탈만한 아이들이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요. 그렇다면 아이들 의사에 상관없이 부모의 의사에 따라서 유모차가 전경들 앞에 섰다는 의미가 될 터인데, 이야기는 거기에서 시작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들이 공분을 느끼고 나섰다는 사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저만 해도 1년 전의 제가 이렇게 촛불이란 말에 호의적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거 다 떠나서 유모차 부대의 문제점은 아이들을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동의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필요하지도 않은 위험에 노출시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하고, 넘어지고 까지면서 자라는 거라고도 하고, 어디 하나 부서지면서도 쑥쑥 큰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런 말이 있다고 해서 애들 싸움 붙이고 넘어뜨리고 까지게 하고 어디 하나 부서뜨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있으면 그게 아동학대지 뭡니까.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유모차 부대의 어머니들의 모성결핍에 대한 비난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사실관계만 따진다면 저 어머니들은 일단 아이들을 위험이 있을 소지가 있는 현장에 끌고 나온 것이 맞죠. 물론 그게 모성결핍이냐에 대해선, 저는 일단 아니라는 입장이긴 합니다만.
팔레스타인 아이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릅니다. 팔레스타인 아이의 아버지는 그 자신 역시 피해자이고, 그 아이가 직면한 위험은 아버지 역시 인지하지 못했고 인지했다손 치더라도 아이가 그런 위협에 직면하는 것에 동의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불가항력이라고 부르지요. 불가항력이 아닌 이상 부모가 아이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심지어 스스로가 위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해도 말이지요. 그 아이들이 만독불침 금강불괴라던가(웃음) 물이랑 방망이가 알아서 피해가는 초능력자라면 다른 문제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아는 한으론 그런 초능력자 아기는 전경 앞 유모차 안에 없었던 거 같습니다. 미국에서 생식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영양실조에 걸리게 하면 부모는 구속되어 아이에게 접근금지가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는 인식이 없었고 실제로 아이를 위하는 행동이라 생각해서 했지만 결국엔 아이를 해치게 되는 행동을 한 것이지요. 그건 죕니다. 그리고 보시는 분들도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아이보다 유모차 부대에 훨씬 잘 어울리는 사례입니다.
위험이 아니라고들 하십니다. 하지만 위험입니다. 상식적으로 보아서 그 상황이 위험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 상황에서 안전해야 정상'이라고 하시는데, 1)그 정상적인 국가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유모차를 끌고 전경 앞에 나서신 거 아닌가요? 또한 2)설령 '정상적인 국가'라는 점을 넘어간다 쳐도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을 간과하고 계십니다. 3)그리고 이 상황은 실수가 일어난다면 평시보다 훨씬 큰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어째 위험이 아닙니까? 신호등 사례에서 신호등을 없애봅시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는 우선권을 지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차가 달려오는 것을 빤히 보고도 아이 손을 잡고 횡단보도로 걸어나가는 부모는 없지요.
유비추론(혹은 사례)을 자꾸 비꼬아서 다시 쓰게 되는데 이 정도면 유추가 의미가 없다는 걸 논박하는데는 충분하다고 보니까 그만하도록 하고요.... 법적으로 옳지 않다고 해서 실제로도 옳지 않다는 뜻은 아니란 얘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저는 실제로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공법상으로 정부의 국민을 지키는 의무에 대한 얘기도 끼어듭니다만, 그 의무의 이행을 믿지 않아서 유모차를 끌고 나선 상황에서 적어도 그 부모의 심리는 (사실이 어떻건 간에) <비록 이명박 ㅅㄲ가 전경한테 밀어버리라고 명령을 내린다 해도> <설마 나랑 우리 애기가 유모차를 끌고 앞에 서 있는데 함부로 밀고 나오진 못하겠지>였을 겁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전반부죠. 저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쥐새끼 수준의 정신나간 명령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일텐데 과연 아이를 끌고 나온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요? 비록 국가가 그런 의무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저런 생각을 가진 상태로 유모차 끌고 나왔다면 그건 현명하지 못한 처사 이상으로 아이를 위험에 처하게 한 게 맞다고 봅니다. 적어도 그 사람들 마음 속에서는.
단순하게 요약해봅시다. 제 아내가 그랬다고 칩시다. 아내를 빼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는 일단 전경 앞에서 강의석처럼 알몸으로 인간 띠라도 만들고 뭐라도 해서 전경이 밀고 오지 못하게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빼올 수 있는 상황이거나 저에게 의논하러 온다면 저는 절대 반대합니다. 아이는 어떠한 위험에서라도 완벽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존재니까요. 적어도 우리는 만전을 기해서 아이를 보호해야 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면 제가 너무 서양식 딱딱한 가치관에 젖어서 애들은 깨지면서 큰다는 단순한 진리는 모르고 있는 건가요?
썰렁한 얘기 좀 해보자면 어청수 총장의 아내나 영부인이 남편이 자는 틈을 타서 전경 앞에 저들을 끌고 나왔다면 저는 어쩔까요? 아울양 님께서 말씀하신대로의 법치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심정적으로는 하등 문제가 없다고 할 겁니다. 게다가 플러스 알파로, 이 경우에는 전경들이 쇄도할 위험이 유모차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통수권자나 지휘관에게 달려든다면 법적인 제지가 가능하니까요. (적어도 저들이 스스로를 알릴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겠지만)
유모차가 비어있었다면(혹은 인형이 들어가 있었다면)? 그렇다면 저는 유모차 엄마들의 나폴레옹적인 지략을 두고두고 칭송했을 겁니다. 하지만 유모차는 주인이 안에 들어가 앉아 있었죠. 거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유모차 엄마들을 비난하는 움직임을 통탄하는 분들은 이 차이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이들을 노출해서 위험을 차단하고 언로를 뚫으려 하는 것은 뛰어난 전략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리 원칙을 지키고 이성을 지키는 것이 투쟁을 장기간 이어나가고 성공적으로 이어지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저에게 이 현시창에서도 빛나는 이상을 찾도록 만듭니다. 적어도 마하트마 간디가 스스로 말 못하고 의사표명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싸우라고 했다던가, 아니면 일제시대 독립 투사 중에 여섯달박이 아이가 있다는 소린 못 들어봤습니다.
오히려 그 암울하기 그지없는 시대에도 '어린이'라는 말을 창조해가며 그들을 위한 읽을거리, 그들을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던 방정환 선생의 존재가 더욱 빛나는 요즘입니다. 그 분 얼굴, 어찌 보시렵니까? 유모차 어머니들을 비난하는 모든 분들이 촛불을 탄압하고 언로를 막는 그들에게 문제가 없고 잘못이 없다는 말을 하고싶은 건 아니에요. 그에 맞서 싸우는 쪽이 정당성을 주장하려 한다면 똑같이 위험에 처해서는 안 되는 것을 위험으로 내모는 방식으로 대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 간단한 것, 이렇게도 긴 글을 써가며 주장해야 할 정도로 안 지켜지고 힘든 것이었습니까? 우울합니다.
ps. '애들이 뭘 알아'라는 주장은 시효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에 관해:
그렇다면 유모차 부대의 어머니들은 애들에 대해 뭘 알고 있습니까? 아이들에게 동의 여부는 물어보셨습니까? 아이들의 정치적인 입장을 알기 이전에 아이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의사능력을 증명받은 3살박이 신동이 '엄마 절 촛불집회의 인간 담벼락으로 써주세요'라고 했다면 그 때 한 번 고려는 해보겠습니다.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같은 의미에서 일부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위에 참가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을 선생으로서 기본 자격이 없는 행위라고 봅니다. 교사 역시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자신이 인지하는 어떤 잠재적인 위협으로부터라도 보호할 의무가(다른 모든 의무에 우선해서) 있으니까요. 아이를 데리고 시위에 참가하는 부모 역시 그렇습니다. 아닌 건 아닌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아이 얼굴을 몇 년째 선동적 블로그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으신 분, 아이 초상권 침해는 그만하시고 빨리 다른 사진으로 바꾸세요 좀.
이 얘기와 관련해서는 모기불통신 기불이 님의 엄마와 애기는 둘이다를 링크합니다.
어떤 아Q병 환자의 뻘짓목록
# by | 2008/09/26 00:40 | 전파 수신중 | 트랙백 | 덧글(15)
2008년 09월 18일
말이 헤픈 외교
북한정보 대응체계 개선해야
뉴욕타임즈에서 '설라무네...' 추측성 보도 하는 시점에서 청와대 관계자가 김정일 뇌졸중 확인했다는 '으잉??? 뭥미?????'한 상황을 병원 침대에 누워서 겪고 나서 계속 느끼고 있었던 걸 적나라하게 꼬집은 사설이다. 이번 학기 전략과목(으하하-;;;) 국제정치학입문 뉴스분석 과제 때문에 찾아보고 비록 한겨레지만 인심써서 링크했다. 이 정도면 솔직히 정부를 까긴 까도 떡밥은 특급 같은데. (웃음)
분석 숙제에는 솔직하게 쓰진 못했지만 차라리 NSC랑 외교부 장관이랑 싸우던 때가 그립다. 이건 뭐 할 줄 알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싸울 건덕지조차 없어....가 본심. 하지만 숙제에서는 조금 포장해서 '현실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을 살려야 한다'고 적었다. 프루던스 얘기로 이렇게 깔 수 있다니 오오 나님의 창의력. 적어도 미국 마음이라도 붙잡아줬으면 고맙겠는데 그것도 어렵나보다. 쵸딩이었던 빵삼 시절에는 참 빵삼 아저씨가 아방하게 보여서 어디가서 코베이지나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 커서 보니 베일 코도 없는 이 대통령 코가 다 불쌍한 거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에 있었던 단 두 명의 이씨 대통령 중 한 사람은 미국한테서 이것저것 많이 뜯어냈다고 평가받는 사람이니 이번 이씨가 그 때 뒤치닥거리를 하는 건가? 그 그런건가? 아무리 그래도 님하 제발 참모들 혀 좀 간수 잘 하라 그래... 나 태어나기도 전이었지만 김일성 부활시켜주는 꼴은 혹시라도 만들지 말고-;; 보는 내가 애처로워.
PS) 하는 김에 요즘 NSC는 뭐하고 있을라나 생각해서 검색해봤더니 무려 상임위원회화 되었더군요? 뭐 통일부를 없애지 못했으니 당연한 수순 아닌가는 생각하는데 그래도 사안 없을 때까지 모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러면서도 말이 안 맞는다는 얘기가 나오질 않으니 오오 이게 더 무섭다. 역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거야. 외교부도 통일부도 NSC도 청와대도. 일을 안 하니 의견대립이 있을 리가 없지.... 차라리 소말리아에 공수부대 투입해서 우리 선원이랑 배 빼오자는 소리가 더 현실감있게 느껴져. 군부야 얼마면 되니 근현대사 교과서만 고치면 되니 대신 사상자 한 명에 국방비 10억달러 어떻습니까??? 다 사상하면 무려 60억 달러의 국방비 절감을 할 수 있습니다. 엇디 아니 조홀시고.
PS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8&oid=028&aid=0001958839 하는 김에 제가 NSC 안부를 궁금해하게 만들었던 한겨레 보도. 이 기사 제목이 원래 '국가안전보장회의 폐지 이후 삐그덕'이었단 것이 최진실??? 네 그렇습니다.
뉴욕타임즈에서 '설라무네...' 추측성 보도 하는 시점에서 청와대 관계자가 김정일 뇌졸중 확인했다는 '으잉??? 뭥미?????'한 상황을 병원 침대에 누워서 겪고 나서 계속 느끼고 있었던 걸 적나라하게 꼬집은 사설이다. 이번 학기 전략과목(으하하-;;;) 국제정치학입문 뉴스분석 과제 때문에 찾아보고 비록 한겨레지만 인심써서 링크했다. 이 정도면 솔직히 정부를 까긴 까도 떡밥은 특급 같은데. (웃음)
분석 숙제에는 솔직하게 쓰진 못했지만 차라리 NSC랑 외교부 장관이랑 싸우던 때가 그립다. 이건 뭐 할 줄 알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싸울 건덕지조차 없어....가 본심. 하지만 숙제에서는 조금 포장해서 '현실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을 살려야 한다'고 적었다. 프루던스 얘기로 이렇게 깔 수 있다니 오오 나님의 창의력. 적어도 미국 마음이라도 붙잡아줬으면 고맙겠는데 그것도 어렵나보다. 쵸딩이었던 빵삼 시절에는 참 빵삼 아저씨가 아방하게 보여서 어디가서 코베이지나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 커서 보니 베일 코도 없는 이 대통령 코가 다 불쌍한 거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에 있었던 단 두 명의 이씨 대통령 중 한 사람은 미국한테서 이것저것 많이 뜯어냈다고 평가받는 사람이니 이번 이씨가 그 때 뒤치닥거리를 하는 건가? 그 그런건가? 아무리 그래도 님하 제발 참모들 혀 좀 간수 잘 하라 그래... 나 태어나기도 전이었지만 김일성 부활시켜주는 꼴은 혹시라도 만들지 말고-;; 보는 내가 애처로워.
PS) 하는 김에 요즘 NSC는 뭐하고 있을라나 생각해서 검색해봤더니 무려 상임위원회화 되었더군요? 뭐 통일부를 없애지 못했으니 당연한 수순 아닌가는 생각하는데 그래도 사안 없을 때까지 모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러면서도 말이 안 맞는다는 얘기가 나오질 않으니 오오 이게 더 무섭다. 역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거야. 외교부도 통일부도 NSC도 청와대도. 일을 안 하니 의견대립이 있을 리가 없지.... 차라리 소말리아에 공수부대 투입해서 우리 선원이랑 배 빼오자는 소리가 더 현실감있게 느껴져. 군부야 얼마면 되니 근현대사 교과서만 고치면 되니 대신 사상자 한 명에 국방비 10억달러 어떻습니까??? 다 사상하면 무려 60억 달러의 국방비 절감을 할 수 있습니다. 엇디 아니 조홀시고.
PS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8&oid=028&aid=0001958839 하는 김에 제가 NSC 안부를 궁금해하게 만들었던 한겨레 보도. 이 기사 제목이 원래 '국가안전보장회의 폐지 이후 삐그덕'이었단 것이 최진실??? 네 그렇습니다.
# by | 2008/09/18 23:34 | 세계 보기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8월 31일
왜 대화방에서 감정을 상하는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것은 철저하게도 쌍방향이어야 하고, 일방향으로 (-)적 감정이 넘치거나 심지어는 (+)적 감정이 넘치더라도 안 된다. (-)가 넘치면 기분이 상하고 (+)가 넘치면 부담스럽다. (-)와 (+) 둘 다 클때도 서로 상쇄하는 대신 기분이 상하고 부담스러워진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로 적대적인지 혹은 친밀한지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생은 끝없는 '거리재기'니까. 다만 대면하지 않고 인터넷을 사이에 둔 사이에서는 그 거리재기의 오독 가능성이 커진다. 오독하게 되면? 말한대로다. 기분이 상하거나 부담스럽거나, 혹은 둘 다 인거다. 나는 이 사람이랑 그렇게까지 적을 만들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 적대적으로 대한다면 기분이 상한다. 갑자기 심한 친한척을 한다면 - 애초에 내 닉은 이걸 경계하자는 뜻이었다 - 부담스러워진다. 내가 이 사람이랑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친한 사이에서나 할 법한 어조로 이상한 농담을 한다면 부담스럽고 기분이 나빠진다. 그건 기본적인 거다.
이렇고 저런 수많은 변수가 있는만큼 인터넷에서, 그것도 글을 올린 후 그 사람이 보기 전에 지울 기회조차 없는 실시간 대화방에선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좋다. 기본적으로 거리를 오독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게 자신과 남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전략이다. 거리를 오독했다 하더라도 최대한 남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확인하는 절차를 가져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건 - 친밀한 쪽이건 기분 나쁜 쪽이건 - 과감한 이야기를 하기 전엔 생각해보고, 왠만하면 하지 말 것. 분위기에 취해서 술 취한 것처럼 두리뭉실 넘어가리라 생각하지 말 것. 말해놓고 '아니다'고 생각했으면 사과하란 소리다. 술자리에서 최악수는 상대가 취했으리라 생각하고 막말하는 것. 얼굴을 보지 않는 경우엔 자신이 하는 말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기에 더욱 무섭다. 만회할 기회가 정말로 적어진다.
이런 걸 다 지켰는데도 누군가 감정이 상했다고 한다면, 그 땐 과감해져도 된다. 그 사람이 성격파탄이거나 중간에서 누가 말을 잘못 옮긴 거거나 둘 중 하나니까. 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애초에 저런 걸 다 지키는 사람이 트러블에 빠지는 꼴을 못 봤다. 안 지키고 정말로 무서운 사람을 적으로 만들고 쩔쩔매는 경우는 수도 없이 봤지만.
항상 그렇지만 이런 얘기는 나 자신한테 들려주려는 느낌이 강하다는 게 포인트.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로 적대적인지 혹은 친밀한지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생은 끝없는 '거리재기'니까. 다만 대면하지 않고 인터넷을 사이에 둔 사이에서는 그 거리재기의 오독 가능성이 커진다. 오독하게 되면? 말한대로다. 기분이 상하거나 부담스럽거나, 혹은 둘 다 인거다. 나는 이 사람이랑 그렇게까지 적을 만들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 적대적으로 대한다면 기분이 상한다. 갑자기 심한 친한척을 한다면 - 애초에 내 닉은 이걸 경계하자는 뜻이었다 - 부담스러워진다. 내가 이 사람이랑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친한 사이에서나 할 법한 어조로 이상한 농담을 한다면 부담스럽고 기분이 나빠진다. 그건 기본적인 거다.
이렇고 저런 수많은 변수가 있는만큼 인터넷에서, 그것도 글을 올린 후 그 사람이 보기 전에 지울 기회조차 없는 실시간 대화방에선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좋다. 기본적으로 거리를 오독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게 자신과 남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전략이다. 거리를 오독했다 하더라도 최대한 남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확인하는 절차를 가져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건 - 친밀한 쪽이건 기분 나쁜 쪽이건 - 과감한 이야기를 하기 전엔 생각해보고, 왠만하면 하지 말 것. 분위기에 취해서 술 취한 것처럼 두리뭉실 넘어가리라 생각하지 말 것. 말해놓고 '아니다'고 생각했으면 사과하란 소리다. 술자리에서 최악수는 상대가 취했으리라 생각하고 막말하는 것. 얼굴을 보지 않는 경우엔 자신이 하는 말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기에 더욱 무섭다. 만회할 기회가 정말로 적어진다.
이런 걸 다 지켰는데도 누군가 감정이 상했다고 한다면, 그 땐 과감해져도 된다. 그 사람이 성격파탄이거나 중간에서 누가 말을 잘못 옮긴 거거나 둘 중 하나니까. 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애초에 저런 걸 다 지키는 사람이 트러블에 빠지는 꼴을 못 봤다. 안 지키고 정말로 무서운 사람을 적으로 만들고 쩔쩔매는 경우는 수도 없이 봤지만.
항상 그렇지만 이런 얘기는 나 자신한테 들려주려는 느낌이 강하다는 게 포인트.
# by | 2008/08/31 16:29 | 시시콜콜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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