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영문학 교수 전설'의 저자 도시조 님이 이글루스에 컴백을 만방에 선포한 계기는 아무래도 이오공감에 올라간 패션에 그리 열광할 필요가 있나요? 였나보다.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 나로서는 그의 책장을 장식하는 책들에 대해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로서는 한 마디 하고 싶었던 것이 왜 소위 '패션된장오덕들의 열폭'에 대한 쿨한, 또는 쿨해야 할 답변이 '패션감각꽝먹물오덕의 열폭'밖에 되지 않냐는 점이었다.
이제부터 도시조 님이 묘사한 그 사건이 실제의 이야기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그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명백히 '다른 사람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하지 못하는 그녀들의 사려깊지 못함'이었다. 누구나가 압구정과 강남의 패션피플처럼 입고 유니클로J를 쇼핑하기 위해 eye of 살쾡이를 번득여야 하는가? 반대로, 누구나가 패션에 대해 수수한 감각만을 유지하며 영문학책을 뒤적여야 하는가? 둘 다 아니다. 스스로의 선택 여하에 따라 영문학의 ㅇ자도 모르고 살면서 두껍고 비싼 영문학책을 살 돈으로 유니클로J를 사기 위해 줄을 설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할인점표 옷을 입으면서 비싼 책을 모으며 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아님 유니클로J는 안 사고 그냥 유니클로에서 좀 저렴하지만 괜찮은 옷을 사 입으면서 영문학책은 두 권 살 것 중에 한 권만 살 수도 있겠지.
다만 무차별곡선과 예산제약선이 만나는 부분에서 개인이 취한 선택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너는 왜 그런 선택을 하냐'고 탓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싸가지가 없고 골이 빈 연놈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도시조 님의 얘기가 모두 사실이란 가정 하에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누군가가 스벅에서 책을 읽는 나를 그렇게 비웃는다면 나도 '니년/놈은 머리가 비었구나'하고 얘기해주고 싶을 것이다. 자, 여기서 비록 화는 나겠지만 한 걸음 더 나가서는 안 되는 포인트가 왔다.
그 자리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 얘네 머리 비지 않았냐'라고 하는 것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러면서, 내가 읽는 책이 얼마나 좋은 책이고 모두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진대 그런 책을 읽지도 않는 연놈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다니 존내 굴욕이라면서 펄펄 뛰면 이번엔 이 쪽에서 역으로 어떤 잘못을 범한 것이다. '왜 너는 책에 돈을 쓰지 않고 옷에 돈을 쓰냐'는 식의, 자신이 받은 모욕의 역을 그대로 상대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들은 공분의 대상이 되기 가장 쉬운 스타벅스에 드나드는 20대 여성. '된장녀'라는 말만으로도 모두가 쉽게 깔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지금까지 이러이러한 영문학책을 읽어온 지적인 도시 남자. 그러나 나를 패션감각가지고 까는 골빈 여자들에겐 차갑겠지'라는 글을 쓴다면 부당하게 도덕적, 지적으로 우월한 입지를 차지하고 인간으로서 열등한 분자들을 꾸짖는 구도가 되어버리고 만다. 기실 내가 받은 피해란 나의 선택에 대한 자유를 무시당한 예의범절의 문제였음에도 말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얘기했지만, 나 또한 스타벅스의 패션피플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 (치, 친해지고 싶어서 패션밸리에 올리니 관심 1g 졈....<-) 나에게 스타벅스는 커피 한 잔에 괜찮은 자리와 무선인터넷까지 덤으로 주는 장소일 뿐. 그런 만큼 이 상황에서 도시조 님이 현명하게, 제대로 예의의 문제를 짚어주었다면 하는 바람까지 있다. 잘 까고 잘 지적한다면야 당연 나로서야 나쁠 것 없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그 예의범절의 문제를, 굳이 이렇게 먹물의 열폭으로 찌질하게 승화해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쿨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한 그의 재능에는 솔직히 감탄마저 하고 있다. 그 글 읽는 동안엔 내가 옷 잘 입는 쪽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거든.
2009/10/26 00:57


덧글
비로그인 2009/10/26 09:03 # 삭제 답글
마지막 한마디에서 완전 공감 ㅋㅋㅋㅋ
친한척 2009/10/26 23:29 #
아니 전 진짜 진지하게 그랬어요...
벨제브브 2009/10/26 09:07 # 답글
옷인가효...솔직히 님 안 만난지 너무 오래되서 너님의 패션센스는 기억조차 안 난다능.
친한척 2009/10/26 23:29 #
패션센스고 뭐고 옷에 돈을 안 쓰지... 스스로 소득이 없으니 뭔가 옷에 돈쓸 여유가 있을리가.
2009/10/26 09:3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친한척 2009/10/26 23:30 #
과 관심 1그램 감사....(....) 이거 쓰려다가 그 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 쓴 포스팅. (이랄까 마지막으로 이글루스가 떠들썩한 것을 본 때가 이 때)
비로긴 2009/10/26 09:36 # 삭제 답글
공감하고 감.책장 보니까 책도 허접쓰레기같은 것만 있던걸요.
개미와 람세스가 반이대요. ㅋㅋㅋㅋ
존 로크 셰익스피어 엘리옷을 미국3류 지잡 다니고 여자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도시조가 통독했을 리도 없고 그런 책 몇 권 읽는다고 없던 지성 생길 리도 없고 머리만 이상해질 가능성이 있다고요.
친한척 2009/10/26 23:30 #
게다가 도시조 님이 그런 책을 읽었건 않았건 별 문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2009/10/26 10:2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친한척 2009/10/26 23:31 #
아니거든?
르혼 2009/10/26 10:25 # 답글
원문 보고 왔는데, 패션 자체에 대해서 까는 부분은 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천쪼가리가 남지 않는다니! 고대 복식 유물이 얼마나 중요한데), 기본적으로는 열폭에 열폭으로 답하는 게 아니라, 나 너 안깔테니까 너도 나 까지 마라 쪽으로 보이던데요.패션에 대한 공격은 열폭이든 비난이든 문제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부분만 제외하면 볼만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헐 2009/10/26 10:33 # 삭제
다시 읽어보니 다른 사람들이 도시조를 비난하긴 한 건가, 그건 그의 망상이 아니었을까, 는 생각도 듭디다. 된장녀들이 남들한테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내가 된장녀라도 도시조같은 애는 안 까고 싶을 것 같아. 아예 쳐다도 안 봐요. 그리고 된장녀들 얘기에 속상해서 갑자기 책 자랑으로 넘어가는 등 황당한 사고 비약과정을 보여줍니다. ㅋㅋ
친한척 2009/10/26 23:34 #
르혼/ 말하자면, 그 '천쪼가리가 남지 않는다'는 부분을 너무 나갔다고 비판하는 것이지요. 그 부분이 있지 않았더라면 저는 도시조 님의 논조를 '열폭'이라고 재단하지 않았을 겁니다.헐/ 그거야 모르는 문제니까요. 소위 '스벅 된장녀'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저도 헐 님도 그들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모르죠.
zyo 2009/10/26 11:45 # 답글
전 나름 전문분야 책도 많이 읽고, 의류쪽에서 일한적도 있는데..그럼 저는 이쪽 저쪽에서 다 씹히는걸까요 ㅋㅋㅋㅋ -_-
다들, 타인이 자기만의 기준에서 어긋나면 이해보다는 옳지 않음으로 생각하더군요
친한척 2009/10/26 23:34 #
양쪽 분야에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쪽에서도 씹히면 안 되는 것일텐데요. 후우.
흠 2009/10/26 11:53 # 삭제 답글
정말이지 위에 비로긴 님 말처럼 책장에 책을 보고서는 ..이건뭥미....하는 단어부터 떠올랐습니다.물론 사람의 취향이라는게 뭐라 할수 없는것이지만...
자랑스럽게 자신은 영문학도이며 영문학도의 책장을 보여주겠노라... 하고 찍어놓은 책들이 왜이리 허접하던지....
제가보기엔 그분.. 뭔가 까야 할 핀트를 넘어가서 안드로메다로 가신듯...ㅎㅎ
그나저나 마지막줄은 정말 동감합니다. ㅎㅎ
저도 제가 옷 잘입는줄 착각하게 만드는 글이더군요 ㅎㅎㅎ :-)
바보이반 2009/10/26 13:20 # 답글
패션에 열광할 필요는 없고, 열폭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는 말씀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