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9 15:06

동정보단 태만 - 이글루스 운영진 What's left: 잔인한 농담들

이글루스 운영진을 동정함.

트랙백한 글과 원래 글에 있는 내용이 실제 일어난 일에 가장 가깝다고 본다. SK의 이글루스 인수는 당연히 이런 식의 포스팅 활용을 전제로 한 포석이었을테고, 그걸 고려하면 오히려 인수 후에도 3년 여를 그대로 유지해왔다는 게 더 신기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3년간 이글루스 운영진의 행동을 동정하기보단 '태만'과 '직무유기'로 규정하겠다. 기업경영이란 지속적인 변화 과정이라는 걸 매일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뭐 그래봤자 학부생이지만^^) 예정되어 있는 변화를 3년간 외면하고 있었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트랙백한 글에 드러난 상황이 진실이라는 가정 하에(그리고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이글루스 운영진들의 생각은 다음 두 가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1) 3년 내로 질 좋은 콘텐츠를 활용한 흑자전환이 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자본. (+그리고 이 자본을 SK에서 대줄 것이다)
2) 하이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본사측에도 어느 정도의 교섭력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1)이 되었더라면 2)가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에는 결정적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으니, 바로 1)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1)에 대한 플랜B가 있는 거도 아니었다. 3년간 이래저래 노력을 하긴 했을 것이다. 전에 이글루 광고도 몇 번 시범적으로 해봤던 것 같고. 하지만 그닥 혁신적인 흑자전환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직무유기라고 하는 건 크게 봐서 세 가지 방면에서의 태만이다. 먼저 흑자전환을 위한 적극적인 모색이 없었다. 아니면 적어도 현재의 컨텐츠를 기반으로 적극적 흑자 모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정도로도 해보질 않은 것이다. 어떤 계획의 실현가능성을 파악하려면 일이 어느 정도 진척되어보는 것 이상이 없다. 애초에 흑자전환을 노리고 있었더라면 일이 추진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흑자가 가능하다/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을텐데, 이글루스 운영진은 이런 면에서 어정쩡한 입장에서 3년을 허비했다.

3년이란 유예기간이 있었음에도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서 사용자들의 배신감을 최소화할 수 있었음에도 연말에 몰아서 굵직한 것들을 터뜨리는 것은 명백한 이용자에 대한 태만이다. 인수 직후 14세를 터뜨렸다면 배신감이 배가되어서 당시 이글루스의 유일한 자산이었던 양질의 컨텐츠가 엑소더스를 하는 것을 막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어도 이글루스가 '변하지 않는' 1년 간의 운영을 통해 사용자들의 신뢰를 쌓은 다음 14세 해금을 위한 포석을 깔았어야 했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도 14세 해금은 이슈화에 비해 이적률이 크지 않았다. 그 때까진 3년간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단 소리다) 근데 그러지 못했다. 네이트 포털화를 시도할 것이라면 적어도 나름의 방식으로 - 다음 내에서의 티스토리 정도의 비중으로 - 포지셔닝을 시도했어야 했지만 그런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수를 통해 이글루스 서비스의 주인이 된 SK에 대해서도 운영진은 태만했다는 인상을 저버릴 수 없다. 지난 3년간 이글루스 운영진은 SK에 대해 이글루스 정체성을 지켜온 투사 노릇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건 궁극적으론 불가능하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는 전형적인 스톡홀름 신드롬인데, 입장이 전혀 다름에도 상대의 입장에 자신의 입장을 투사해서 그들을 옹호하게 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터다. 결과적으로 이반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동반 이탈하게 되면서 이글루스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SK에도 미안한 짓을 저질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다음 내에서 티스토리가 가지는 비중 정도로 이글루스가 네이트닷컴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다.

아무튼 이러니저러니해도 나는 '퍼가요~~~~~~'가 싫다. 이게 현실화될 수 있다는 걸 보게 된 이상 이글루스에 더 이상 남은 정은 없다. 떠날 생각이고, 프리덤이 정상화되는 대로 바로 백업해서 이미 차려둔 티스토리(http://mrchatty.tistory.com)로 갈 생각이다. 남은 글은 이글루스 '퍼가요~~~~~~~~'가 생기기 전까진 남겨둘지도 모르지만 그게 생긴다면 모르겠다. 이글루스 운영진의 건투를 빈다. 하지만 회사 경영에 대해선 쥐뿔도 고려 안 했으면서 고압적으로 자기들이 뭘 잘 안다는 듯이 이글루스 운영진을 가르치려는 글들까지 난무하는 것을 보니 운영진의 스톡홀름 신드롬에 대한 보답은 참 허망한 수준 같아서 마음이 아프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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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oyce 2008/11/29 16:30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운영진이 SK가 원하는 일을 처리하는 데 태만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을 것 같아요. 이글루스가 변화하고 나면 자신들의 입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해...
    그런 이기적 필요 때문에 자신들이 기존 유저들의 허구적인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환상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 공지에 달리고 있는 덧글들은 그 환상에 대한 대답이겠네요.
  • 친한척 2008/11/29 23:04 #

    원글로 생각할 여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네이트에서 이글루스를 다음에서 티스토리가 가지는 위치처럼 만들려 한다면 그걸 해내는 것은 기존 이글루스 운영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른 분들 생각은 다른가봐요. SK(+이글루스 운영진)에게 보이는 저 분노어린 외침은 아마 그걸 반영하는 거 같아요.
    그나저나 flickr fave처럼 펌을 만들어보라는 joyce 님의 글 읽어봤는데, 의외로 신선하고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마켓 리서치를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어쩌면 좋은 글 링크하는 방식으로 블로그 운영하시는 어르신들에 대한 니치마켓이 형성될지도 모르겠고요.
  • Neissy 2008/11/29 16:42 # 답글

    어쨌든 이번 저작권 문제가 생기기 전까진 난 운영진에 호의적인 입장이었지. 하지만 이번의 약관 변경 사태는 말 그대로 선을 넘은 거라.. 이러면 이글루스에 '질 좋은 글'을 올리기 힘들어지지.
  • 친한척 2008/11/29 23:04 #

    저도 옮길 생각은 없었는데 '퍼가요~~~~~~~~~~~~~'는 싫다능.
  • 쌍부라 2008/11/30 00:09 # 답글

    온통 ㅂㅂ2 뿐인 밸리에서 중심을 잡은 글을 보니 반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ㅠㅠ..
    운영측의 실책이 아무리 명백하다지만, 나가는 마당에 욕을 퍼붓는 분위기는 영 마음에 안들었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몇번인가 시도를 하려고 모양만 내다가, 다른 사업부의 잇단 실패에 이글루스 사업부도 기가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블로그에 광고가 달린다거나, 점진적인 외부 노출 증대라든지 (사실 이건 좀 꿋꿋하게 나갔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는데) 하면 과연 지금 단체로 짐싸고 나가요를 외치는 사람들이 고운 눈으로 보고 동의해줬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경기가 좀 좋았던 3년 동안 아무런 수익모델을 개발하지 못했으니, 이글루스가 이렇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로 보입니다. 하필이면 외부 상황마저 좋지 않네요 -_-; SK 컴즈도 정체기를 넘어서 지금은 쇠퇴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요. (싸이월드 홈2의 실패가 굉장히 컸겠죠..)
  • 친한척 2008/11/30 00:16 #

    애초에 'SK가 인수해도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는 천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걸 직시했어야 했는데, 그걸 미룬 결과로 이글루스는 SK의 다른 컨텐츠와는 이른바 '코드'가 안 맞는 발전을 거듭했고 결국 지금와서 훨씬 곪아버린 환부를 어쩔 수 없이 뗴어내게 된 셈이지요. 저는 제가 나름 이글루스 운영진을 강도높게 비판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체 밸리 분위기가 어떤 건가요 지금... 군중심리가 아주 없다고는 말 못할 수준인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SK는 성공한 벤처 사들여서 그저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데에는 특허를 내도 될 지경이네요. 사실 저는 SK기업이 벤처 캐피탈 수준으로 머물러 있었으면 합니다. 문화컨텐츠 기업으로 SK컴즈는 그렇게 혁신적이라고 보이진 않거든요. 하지만 기업이 항상 크기가 크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종국에는 그럭저럭 해내니 원....
  • 쌍부라 2008/11/30 00:22 #

    > SK는 성공한 벤처 사들여서 그저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데에는 특허를 내도 될 지경이네요.

    ..구글도 좀 이런게 없진 않지만 SK는 그룹 자체도 그리 '열려있다'와는 거리가 머니 그렇지 않을까요.
    모기업인 SK는 아무래도 경쟁사가 많지 않은 에너지 사업을 하고 있으니 안정적인 현금장사를 하던 회사고요. SK Telecom은 그룹의 가장 확실한 캐시카우고요. 어떤 면에서 SK Communications의 싸이월드 인수는 사실 정말 어쩌다가 대박 터뜨린 사건이었죠. 싸이월드가 텔레콤과는 달랐던 점이라면 사용자들이 지나치게 변덕적이어서, '나도 안하면 안되는 줄 알았더니' 안해도 그만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회사는 그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SK 컴즈가 이글루스와 엠파스 등을 먹은 것은, 별로 돈이 안되는 상태로 서비스를 유지하던 해당 업체에게는 좋은 사건이었을지 모르나(..) SK의 기업 이미지와 맞지 않아서 파국이 예고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나마도 인수를 통한 모델을 제시했으니 긍정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해야 할까요.
  • 친한척 2008/11/30 01:47 #

    구글이야 아예 사람을 사들이는 수단으로 인수를 한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회사니까요.... orz 그 대인배스러움이 SK컴즈와는 다르죠 ㅠㅠ

    사실 요즘 들어와서도 SK컴즈가 저렇게 벌어들인 돈을 굴릴 정도로 효용성이 있는 수단인지 의심이 갑니다. 싸이월드 어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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