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9 23:59

마지막이란 것 국소지향

그게- 사람이란 게 원래 마음이 여유롭질 못하면 존나게 추위를 타. 아나 씨발, 지금 내가 입고 다니는 게 미군 속옷 - 그래, 미군도 속옷이란 게 있어 - 에 그 위에 티 하나 입고, 그래가 군복 덧입고 그래가 다니거든? 근데 별로 안 추워. 아 씨발 근데 훈련소에서는 미군이 옷 입으라는 거 다 입고, 그 위에 한국군 보급품까지 다 껴입고 핫팩 두 개 차고 침낭 안에 쏙 들어가가 자는데도 존내 추워. 존내 춥다고 알아? 이기 다 마음이 험한 기라가 그런 기야.

마음이 얼어 붙었다. 즐거워서 웃긴 했지만 소리까지 내서 웃진 못할 정도였다. 한없이 줄어가는 술병 앞에서 강한 사람 없었고 결국 둘이 남아 친구랑 소주도 그만 마시고 얘기만 했다. 꾸벅꾸벅 졸다가도 한 얘기는 다 기억하고 어김없이 이어지고 했다. 마지막 저항군이 잔다고 드러누운 이후에도 두 시간 정도를 그렇게 얘기하다가 일곱 시에 이불도 없이 기모 들은 후드티 푹 눌러쓰고 잠들었다. 온돌 위라서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한 시간 뒤에 결국 깨서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이 필요했다.

뭔가를 해야하긴 했는데, 마음이 급한 거에 비례해서 몸도 따라주질 못했다. 엇박만 그리다가 결국 '형은 저기 가서 그냥 앉아 있어요' 소리만 들었다. 세미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적당히 끝맺는 게 생산적이라 끝맺고 제부도를 돌아보러 나갔다. 누가 제부도는 작은 섬이라고 했냐. 걸어도 걸어도 섬이 돌아지질 않는데. 그래도 옆에 사람들을 두고 걸으면 나은 것이다. 두 시간 강행군 끝에 돌아와서 미군납 쇠고기를 구워먹었다. 후배도 한 사람 카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마피아도 하자고 그러고, 저녁 세미나 발제자도 왔다. 게다가 ** 형도 온다고 그랬다. 하지만 와야 했다. 적어도 시작도 하지 않은 팀플 내 부분을 두고 거기에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건 기본적으로 존엄성의 문제를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미루고 미뤘던 이번 학기 나태의 과실이 거기서 툭 터진 거였다.

내려와서 버스를 같이 기다려주던 녀석이랑 얘기하면서 아, 이제 정말로 이 녀석과 - 그리고 아마도 내가 마음을 줘둔 애들과 - 이렇게 대학 초년생 냄새 나도록 놀 수 있는 건 이날이 마지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왈칵 그리워질 것 같았다. 아니 벌써 그리워하고 있었다. 버스타고 돌아가면서 만조 시간을 가르쳐준 기사님은 학생들을 보면 차이가 난다는 애매한 말을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뭐란 소린가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오히려 자기가 정관정요를 아는 것이 대단하단 것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눈치시길래 맞장구 쳐드렸다.

그래서 서울에 올라와서, 두 시간 자고 팀플 부분을 메꾸어 보낸 다음 과외를 갔다. 두 시간 과외하고 다시 학교로 가서 이번엔 팀플을 마무리했다. 같이 팀플하지만 별로 친하진 않은 화학부 형과 처음으로 스몰토크가 아닌 얘기를 하면서 집에 오니 이제는 레포트 하나가 남았다. 이것만 제 때 끝내고 나면, 그럭저럭 이번 학기 나태의 결과는 다 주워담은 셈이 된다. 이제는 기말고사만 보면 되니까.

모든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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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오렌지군 2008/11/10 00:11 # 답글

    인생 우울하네, 자네.
  • 친한척 2008/11/10 00:13 #

    조울증 기는 확실히 있는 듯.... 그래도 니가 법대라서 다행이다. 군대 가지 마..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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