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25일
남한은 종속변수다?
남주홍 교수와 [통일은 없다]
1. 철저히 사례 중심의, 그리고 일부에 대한 논박일 뿐이다. 트랙백한 본글에 대해서는 덧붙일 것이 그다지 없다고 보지만, 그 글에 달린 리플들이 석연찮아서.
2. 남북관계라는 건 일단 몇 번의 큰 변화를 거쳤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대충 48년 남한 총선거(와 그를 포함한 53년까지의 전시상황), 시간적으론 육영수 여사 살해사건이 일어난 전후의 74년경, 한-소, 한-중 수교,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 있었던 노태우 시기, 그 다음에 94년 제네바 협약으로 대표되는 핵위기가 부각된 시기 정도로 구분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지금 네오콘이 집권한 미국과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하는 북한의 관계는 핵위기의 연장선상이다. 애초에 북한을 찍어누르려는 미국과 미국에 찍힘당하지 않고 뭔가 얻어내려는 북한의 의도가 핵에서 모두 집결됐고, 클린턴 행정부의 경우 제네바 합의 이후 뭔가 할 수도 없이 여야 수적 비례가 뒤집혀 버렸으므로, 그리고 그 뒤로 질질질 끌기만 하다가 북한은 위기의 수렁으로 몰리고 미국은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다 정권이 넘어가 버렸으므로 어쨌거나 이 시기와 이 연장선상의 부시 행정부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핵위기 시기이다.
3. 그런데 이 핵위기 시기도 벌써 몇 년째냐, 하여간 적어도 10년은 넘었는데, 그 동안 남북관계가 어떻게 흘러간걸까? 두 나라 간의 관계를 판별하려면 뭣보다도 양국이 서로의 정부와 국민에 대해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판별해야 할 터다. 이 영향력의 총량 자체가 적다면 그 두 나라는 별 관계가 없는 거다. 하지만 총량은 큰데, 주로 부정적인 면으로 행사된다면(즉, 무슨 말만 하면 서로 분쟁이 벌어진다면) 두 나라간의 관계는 '나쁘다'고 표현할 수 있을테다. 그 반대라면 두 나라의 관계는 좋은 것이고.
4. 잃어버렸건 잃어버린 게 아니건 최근 10년을 보면서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포지티브한 영향력을 길러왔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한국 사람이 북한의 명산을 찾아가서 구경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고 거기서 기업을 한다는 건 상상은 커녕 꿈도 꾸지 못한 일이다. 두 나라 간의 교류는 곧 상대에 대한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에 북한은 우리가 주는 달러에 맛을 들였을 테고 그래서 끊기가 쉽지 않다. 한국 역시 이런 상황에서 국민 여론과 외주 기업체들의 상황을 고려해서 경협과 관광을 끊기 쉽지 않고. 애초에 교류의 총량이 올라갔기 때문에 상호 의존(주로 경제적)으로 인해서 서로간에 반영구적인 평화가 형성된다는 것은 코헤인의 상호의존적 자유주의의 핵심 아이디어지만 아직까지 권력정치의 요소가 강한 한반도 주변의 정세에서 그런 정도를 바란다는 것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겠다.
5. 여기서 짚고 넘어가게 되는 문제가 곧 한국의 협상력인데, 과연 미국의 정책에 있어서 한국은 단순히 힘을 실어주기 위한 하나의 종속된 수단일 뿐일까? 그렇게 보는 것이 현실주의라는 말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단순히 현실주의적 측면에서 보아 북한의 국력은 제일 약한데도 북한이 6자회담의 향배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현대 현실주의는 이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장치를 추가했으며, 단순히 힘의 총합을 비교해서 센 자가 이기고 약한 자는 깨진다고 보는 것은 현실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6. 대표적으로 YS가 대선후보 시절에 온갖 아료를 부리면서 미국과 북한의 협상을 훼방놓았던 것을 들 수 있다.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보는 상호의존 내지는 국제사회적 관점 때문이건 아니면 미국이 현실적으로 한반도 주변에 투입할 수 있는 전력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주의적 입장에서건 아무튼 미국 역시 한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세계를 보는 어느 입장에서건 자기네 마음대로 무조건 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힘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에서 이는 더욱 엄정해서 웨스트팔리아 이전부터 있어왔고 1700년대 위트레흐트에서 왕조적 정당성을 상회하는 규범으로까지 규정된 세력균형과 같은 예가 있다.
7. 이런 식의 네거티브한 영향력만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한국을 분명 협상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 자체가 곧 우리의 협상력이 될 수 있다. 이 상황 자체에서 대한민국엔 북한이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물론 외교 담당자가 충분한 Prudence를 보유한다는 가정 하에) 협상에 관여하는 factor는 매우 다양하고, 그 중에는 분명 우리가 북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멘텀도 존재한다. 적어도 북한이 우리에게 의존하는 면이 있는 한 우리는 작을지라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것이 외교 관계와 협상의 본질이니까. 아쉬운 놈이 굽힌다.
8. 무엇보다도 다른 상황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성을 내포하는 핵위기 상황에서도 10년간, 그것도 탈냉전 직후보다도 더 활발한 상호교류를 유지해온 최근 10년의 대북정책이 '실패'라고 평가받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들이 '허수아비' 취급받을 일도 없고. 지금의 상황은 평화를 돈으로 사고 있는 송나라 때라기보단 ODA를 적극 늘리고 있는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의 ODA보다도 도덕적인 포지션마저 우월하다. 통일은 일단 우리에게 있어선 선택지라기보단 필수에 가깝기 때문에, 이건 현명하기까지 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 끼어있는 정치적 고려와 각종 국내적인 요소를 조금 더 배제해야겠지만.
1. 철저히 사례 중심의, 그리고 일부에 대한 논박일 뿐이다. 트랙백한 본글에 대해서는 덧붙일 것이 그다지 없다고 보지만, 그 글에 달린 리플들이 석연찮아서.
2. 남북관계라는 건 일단 몇 번의 큰 변화를 거쳤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대충 48년 남한 총선거(와 그를 포함한 53년까지의 전시상황), 시간적으론 육영수 여사 살해사건이 일어난 전후의 74년경, 한-소, 한-중 수교,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 있었던 노태우 시기, 그 다음에 94년 제네바 협약으로 대표되는 핵위기가 부각된 시기 정도로 구분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지금 네오콘이 집권한 미국과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하는 북한의 관계는 핵위기의 연장선상이다. 애초에 북한을 찍어누르려는 미국과 미국에 찍힘당하지 않고 뭔가 얻어내려는 북한의 의도가 핵에서 모두 집결됐고, 클린턴 행정부의 경우 제네바 합의 이후 뭔가 할 수도 없이 여야 수적 비례가 뒤집혀 버렸으므로, 그리고 그 뒤로 질질질 끌기만 하다가 북한은 위기의 수렁으로 몰리고 미국은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다 정권이 넘어가 버렸으므로 어쨌거나 이 시기와 이 연장선상의 부시 행정부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핵위기 시기이다.
3. 그런데 이 핵위기 시기도 벌써 몇 년째냐, 하여간 적어도 10년은 넘었는데, 그 동안 남북관계가 어떻게 흘러간걸까? 두 나라 간의 관계를 판별하려면 뭣보다도 양국이 서로의 정부와 국민에 대해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판별해야 할 터다. 이 영향력의 총량 자체가 적다면 그 두 나라는 별 관계가 없는 거다. 하지만 총량은 큰데, 주로 부정적인 면으로 행사된다면(즉, 무슨 말만 하면 서로 분쟁이 벌어진다면) 두 나라간의 관계는 '나쁘다'고 표현할 수 있을테다. 그 반대라면 두 나라의 관계는 좋은 것이고.
4. 잃어버렸건 잃어버린 게 아니건 최근 10년을 보면서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포지티브한 영향력을 길러왔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한국 사람이 북한의 명산을 찾아가서 구경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고 거기서 기업을 한다는 건 상상은 커녕 꿈도 꾸지 못한 일이다. 두 나라 간의 교류는 곧 상대에 대한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에 북한은 우리가 주는 달러에 맛을 들였을 테고 그래서 끊기가 쉽지 않다. 한국 역시 이런 상황에서 국민 여론과 외주 기업체들의 상황을 고려해서 경협과 관광을 끊기 쉽지 않고. 애초에 교류의 총량이 올라갔기 때문에 상호 의존(주로 경제적)으로 인해서 서로간에 반영구적인 평화가 형성된다는 것은 코헤인의 상호의존적 자유주의의 핵심 아이디어지만 아직까지 권력정치의 요소가 강한 한반도 주변의 정세에서 그런 정도를 바란다는 것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겠다.
5. 여기서 짚고 넘어가게 되는 문제가 곧 한국의 협상력인데, 과연 미국의 정책에 있어서 한국은 단순히 힘을 실어주기 위한 하나의 종속된 수단일 뿐일까? 그렇게 보는 것이 현실주의라는 말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단순히 현실주의적 측면에서 보아 북한의 국력은 제일 약한데도 북한이 6자회담의 향배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현대 현실주의는 이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장치를 추가했으며, 단순히 힘의 총합을 비교해서 센 자가 이기고 약한 자는 깨진다고 보는 것은 현실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6. 대표적으로 YS가 대선후보 시절에 온갖 아료를 부리면서 미국과 북한의 협상을 훼방놓았던 것을 들 수 있다.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보는 상호의존 내지는 국제사회적 관점 때문이건 아니면 미국이 현실적으로 한반도 주변에 투입할 수 있는 전력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주의적 입장에서건 아무튼 미국 역시 한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세계를 보는 어느 입장에서건 자기네 마음대로 무조건 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힘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에서 이는 더욱 엄정해서 웨스트팔리아 이전부터 있어왔고 1700년대 위트레흐트에서 왕조적 정당성을 상회하는 규범으로까지 규정된 세력균형과 같은 예가 있다.
7. 이런 식의 네거티브한 영향력만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한국을 분명 협상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 자체가 곧 우리의 협상력이 될 수 있다. 이 상황 자체에서 대한민국엔 북한이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물론 외교 담당자가 충분한 Prudence를 보유한다는 가정 하에) 협상에 관여하는 factor는 매우 다양하고, 그 중에는 분명 우리가 북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멘텀도 존재한다. 적어도 북한이 우리에게 의존하는 면이 있는 한 우리는 작을지라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것이 외교 관계와 협상의 본질이니까. 아쉬운 놈이 굽힌다.
8. 무엇보다도 다른 상황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성을 내포하는 핵위기 상황에서도 10년간, 그것도 탈냉전 직후보다도 더 활발한 상호교류를 유지해온 최근 10년의 대북정책이 '실패'라고 평가받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들이 '허수아비' 취급받을 일도 없고. 지금의 상황은 평화를 돈으로 사고 있는 송나라 때라기보단 ODA를 적극 늘리고 있는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의 ODA보다도 도덕적인 포지션마저 우월하다. 통일은 일단 우리에게 있어선 선택지라기보단 필수에 가깝기 때문에, 이건 현명하기까지 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 끼어있는 정치적 고려와 각종 국내적인 요소를 조금 더 배제해야겠지만.
# by | 2008/02/25 00:44 | 세계 보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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